박일규 시인은
1933년 전라북도 정읍 학동에서 태어나 전주농업학교, 전북대 상대를 거쳐
<어린이 신보>사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.
6·25 사변 때 사업에 투신하여 한국중앙기계 대표, 내쇼날 합성대표, 한국후지기계주식회사 회장 등을 지냈다.
한편 청년기부터 다듬어온 시력詩力으로 중년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을 받아 <현대문학>을 통해 시단에 데뷔했다.
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매일 새벽 미사와 성체조배를 빠뜨리지 않는다.
길을 가는 사람
여기 길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.
떠나 온 고향의 그리움을 가슴에 가득 안고
아득한 산길을 뚜벅뚜벅 걷는 길손.
돌부리, 비바람, 사이사이 비치는 햇살, 그윽한 숲의 향기.
산허리에 걸친 구름도 이젠 한걸음 한걸음 다 벗어났는가,
비 멎은 뒤 처음 보듯 새로워만 보이는 이름 모를 들꽃들.
정녕 맑고 새로운 것은 보는 저 눈입니다. 마음입니다.
길손의 이 꾸밈없는 눈길을 빌어 그저 발걸음만 옮기던 道伴도 문득 눈을 뜹니다.
가슴을 열고 새 하늘 새 땅을 봅니다.
道人이 따로 없습니다.
한뉘 다하도록 오롯한 믿음으로 길을 가는 사람, 열어 주는 그 사람이, 바로 道人입니다.
그 이름 朴日圭, 믿는 이 유스또.
장 익 주교
언제 그 사람들이 안 와?
30대 초반 멋모르고 ‘드라이아이스’ 제조업에 손을 댔다가 그만 낭패를
본 일이 있었다. 결국 길바닥에 붙어있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집에서 세 아이와
우리 내외가 살게 되었는데 길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
쾅쾅 울려왔다. 방에 누워있는 것인지 길바닥에 누워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
그런 집이었다. 그런 집에도 도둑이 들어 아이들과 동요를 듣곤 하던
휴대용 소형전축까지도 가져가 버렸다. 거기에 내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는
사람들이 찾아와서는 피말리는 빚 독촉을 했다.
한숨 돌리는 유일의 피난처가 여섯 살 난 아들녀석과 대중목욕탕에 가는
일이었다. 목욕탕에서 마주앉으면 이때라고 느껴지는지 이 녀석이 슬그머니
목소리를 낮추어 내 눈치를 살피며 떠보는 것이었다.
“아빠, 언제 그 사람들이 안 와?”
<절망 곁에 있어준 사람들>중에서
머리글 박수아
황새물 아저씨의 참새구이
할아버지와 하모니카
첫 직장 수줍은 시절
창세기
규태야, 규동아!
오군도烏群圖
황새물 아저씨의 참새구이
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
십육만 사천팔백 원
어머니와 아내
조춘早春
십육만 사천팔백 원
만난들 무엇하겠는가
누룽지와 선악과
게임소프트와 외할아버지
우리 어머니
검정 옷 한 벌
절망 곁에 있어준 사람들
큰딸의 큰아들과 작은딸의 둘째 딸
검정 옷 한 벌
열다섯 살 누이동생
복사꽃
‘판길이’아저씨
노을 107
징소리 여운
고향의 봄 본향의 봄
장고 독주長鼓 獨奏
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이야기
징소리 여운
잃어버린 것들
점니 고모의 “어부~바”
꽃이 피는 날
나는 무슨 물이 들었는고
창조주의 매품
촛대도 가져가시오
꽃이 피는 날
‘맨발이’의 영혼
하늘이 제 빛으로
침묵의 심연
신도네의 침묵
돌의 밀어
탈출 불감증
세례자 요한과 단테의 신곡
최후의 만찬과 첫미사
에필로그
만남의 미학 천이두
맺는글 박일규